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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명상

진득하게 고민하기 - 하나만 잘하자

명상의 핵심은 잠시 멈춤이다. 우리의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든 하려고 하기 때문에, 멈추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명상하기로 마음먹고 자세를 고쳐 앉아서 눈을 감아도 수시로 딴생각이 떠오른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KBS

 

그럼 도대체 평소에는 어떠한 혼란 속에서 생활하는 것일까.

 

사무실을 예로 들어보자.

요즘은 모니터가 기본 2개다. 인간은 멀티태스킹을 효율적으로 할 수 없다고 밝혀졌음에도 사람들은 모니터를 추가로 연결하고 싶어서 회사가 지원해주지도 않는 특수 어댑터까지 구매해 가며 연결한다. 물론 트레이딩 룸 같이 특수한 환경의 직업에서는 필요할 수 있다.

 

업무를 위해 기사를 검색하기도 하고, 밤새 무슨 이벤트가 있는지 궁금해 기사들을 둘러본다. 블로그 메인에 들어가니 구독하는 글들이 하루새 수십 개가 쏟아져있다. 그중 입맛에 맞는 제목의 글들을 모조리 눌러 옆의 탭에 띄워둔다. 짬짬이 읽어야지. 하도 많이 띄워 탭의 제목이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특례보금자리론의 세부 규정이 발표되었다는 글이 눈에 띈다. 나에게도 해당사항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마음먹는다.

 

그 사이 휴대전화에는 푸시 알림이 수십 개가 떠있다. 모니터 옆에 스탠드형 충전기에 세워둔 휴대전화에 눈이 간다. 광고 문자, 리멤버 뉴스, SNS 알림 등 끝이 없다. 대충 훑다 보니 통장에 입금 내역이 있다. OO카드 캐시백. 아, 이번 달 혜택도 받으려면 최소결제금액 충족해야 하는데 얼마나 썼더라. 카드사 어플을 열어본다. 

 

책상 위에는 출근길에 읽다가 만 책이 놓여있다. 맞다. 짬짬이 책도 읽었어야 했는데. 마저 읽어 본다. 켈리 최가 쓴 웰씽킹을 읽고 있는데, 본인이 사업 성공 원동력 중 하나는 어머니였다며 어머니를 위해 아침방송에 출연했던 사연이 적혀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켈리 최의 얼굴. 시선을 다시 들어 모니터로 향한다. 잔뜩 띄워둔 탭 옆에 조그마한 "+" 모양의 새 탭 열기를 클릭하여 "켈리 최 아침마당"을 검색한다. 본명은 최금례 씨. 음 생각보다 미인이시네. 부럽다.

 

퇴근 시간이 되어 PC를 종료하면서 깨닫는다. 열어둔 블로그 새 글들을 다 못 읽었네. 특례보금자리론 그거 엄청 혜택이라는데 해당사항 없는지 못 알아봤네. 책은 조금 읽긴 했는데, 맥락이 끊겨서 집에 가면 다시 챕터 첫 부분부터 읽어야겠네.  

 

오늘 하루, 해결한 문제 혹은 달성한 목표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릴 적은 깨나 집중력이 좋은 아이였던 것 같은데, 지금 검사하면 십중팔구 ADHD판정을 받을 것 같다.


 

어느 순간 진득하게 고민할 시간이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시간과 나이의 노예가 되어 정해둔 기간까지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해결하면 해결할수록 해결해야 할 일이 늘어난다.

시간에 쫓기니 하나하나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고 남들이 정리해 둔 요약을 좋아하고, 그것마저도 건성으로 확인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 스스로의 생각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천천히 느려도 좋으니, 꾸준하게 하루 한 가지의 생각에 집중해 보자. 

 

과잉된 자의식을 내려놓자. 

나는 하루에 그리 많은 일들에 집중할 수 없다. 

남들도 그렇다. 

하나라도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을 실천한다면 오늘 하루는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