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장 의료기술이 발달하게 됨에 따라 죽음을 터부시 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예전과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객사'를 한다.
30여 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는 그러했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고향으로 내려가셨고 생활하시던 안방에서 죽음을 맞이하셨다. 그 뒤로 집 대문에 상중임을 알리는 등을 켜두고, 조문객들을 모시기 위해 할머니와 어머니를 포함한 며느리들은 밤낮없이 음식을 해 날랐다. 집안에 손님을 모실 수 없으니 집앞 공터에 흰색 천막을 여러 동 쳐두고 자리를 마련했던 기억이 있다.
병원에서의 객사라는 표현이 참 와닿는다. 우리 할아버지 때처럼 다시 예전처럼 살던 곳, 고향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날이 올까. 죽음을 터부시 하는 것, 즉 현생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할 텐데 한국, 특히 서울을 보고 있자면 그럴 일은 다시는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죽어서 육신을 벗어나게 되면 육체에 있는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되므로 꽃 본래의 진정한 색깔을 아주 생생하게 감지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저자가 책 분량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주장하는 사후생, 근사체험 등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육신에 영혼이 존재할 때에는 뇌에서 갖가지 필터링을 하는 과정 때문에 실체를 정확히 바라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육신을 거치지 않은 영혼이라는 존재가 물체를 생생하게 감지한다니. 설령 그렇다 해도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인지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본래의 진정한 색깔'은 아닐 것이다.
영혼이 인식하는 것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으로 감지할 수 없는 미지의 이미지일 것인데, 저자가 그것을 의미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유체이탈한 영혼이 심폐소생을 시행하고 있는 의료진의 이름표를 보았다거나 상황을 명확히 '인지'했다는 사례들을 들면서 주장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존재가 사물을 우리가 바라보듯이 인지한다고? 저자가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내용과 주장은 의사라는 권위로 여론을 호도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류의 사후 세계관이 조금 더 여러 의학자와 과학자들 간에도 주류 주장이 될 때까지는 의견을 보류하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사후세계가 앞으로 더 명확히 밝혀지면 좋겠다는 응원을 보낸다.
격정적인 마음 상태에서는 나중에 후회할 만한 충동적인 행동이나 실수를 할 가능성이 많다. 그럴 때에는 행동을 자제하고 우선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자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여하간 책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주제는 매우 좋다. 격정적인 마음 상태일 때에는 행동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은 삶의 매 순간에 적용할 수 있는 진리이다. 사후를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터부시 하지 않음으로써 삶을 소중이 하고 본질과 의미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어가기를 바라는 마음. 오늘도 충만한 하루를 살아냈음에 감사하자. 내일도 감사히 하루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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