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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독서

남겨진 자들의 두려움

>> 책의 전반부까지만 읽고 남기는 감상평이므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과는 다른 해석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지은이 정현채 서울대 의대 내과학 교수(소화기학)는 위염이나 위궤양 등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로,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대한헬리코박터및상부위장관 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직업인 의사가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3년경부터다. 부모님과 친척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무렵 아내가 권해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을 접하면서 생사관에 큰 변화를 겪었고, 종교인이나 철학자의 관점이 아니라 의사인 과학자의 시각으로 죽음을 알고 싶었다.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Lancet)』이나 의과학 전문학술지에 게재된 근사체험에 관한 논문 등을 찾아 본격적으로 죽음을 공부했다. 수많은 과학적 연구 성과를 접하며, 죽음은 사방이 꽉 막혀있는 벽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 죽음으로써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면 자살하는 이들이 크게 줄 것이며, 말기 암 환자 등 죽음을 앞둔 이들도 존재가 소멸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의사로서의 임무만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많은 사람이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직면하고 사유하여 살아 있는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다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일이라는 자각에서, 2007년부터 대중을 상대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 부모를 여읜 중학생과 친구들을 앉혀 놓고 강의를 한 적도 있고, 대학 최고위과정의 60~70대 수강생까지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480여 회의 강의를 소화해 ‘죽음학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또한 한국죽음학회 이사로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동시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단행본 출간을 준비했다. 책의 원고를 마무리하던 시점인 2018년 초,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았다. 두 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동시에 이미 탈고한 원고를, 죽음에 한 발짝 다가선 암 환자의 시각으로 다시 퇴고하며 죽음에 대해 더욱 깊이 사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때마침 2018년 2월부터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본인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무의미한 연명의료 관행을 끊을 수 있는 의미 있는 법률이다. 정 교수는 암 투병 때문에 정년을 2년이나 앞당겼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대중강연을 다니고 있다. 존엄하게 죽을 인간의 권리를 알리고, 많은 사람이 죽음을 제대로 알고 준비해야 된다는 생각에서다.
저자
정현채
출판
비아북
출판일
2023.04.21

 

죽음에 관한 책은 대개 철학적이다. 책 표지를 접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먼저 산 어른으로서 후배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기대했다. 의과대학 교수라는 타이틀이 더욱 기대감을 부풀게 했다. 철학적인 주제에 저자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얹어 몰입도가 높아질 것 같은. 책의 도입부에는 저자의 죽음에 대한 강의를 병에 걸렸거나 죽음을 앞둔 지인에게 알리면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하니 나의 예상대로 흘러갈 듯한 느낌이었다. 많이 공부하고 경험한 교수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끝이라는 두려움과,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을 맞이한다면, 나는 내 인생의 마감에 대해 큰 두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남겨진 사람들이다. 이른 나이에 내가 죽거나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면 금전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남겨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2가지 시스템을 구축하려 노력한다. 첫 번째는 건강.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다만 온갖 병치레를 하며 죽어가는 건 원하지 않기 때문에 신체 건강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두 번째 시스템은 자산관리 시스템이다. 급작스럽든 자연스럽든 죽음이 찾아오면 남겨진 가족에 대한 부양 의무는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워런 버핏은 본인이 죽으면 가족 재산의 대부분을 S&P500 지수에 넣어둘 것이라고 했다. 리스크 대비 안정적으로 자본을 키워가기 위해 처자식에게 자산을 세팅해 주고 교육해 줄 의무가 나에게 있다.

 

이 정도 생각을 갖고 책의 전반부를 읽어 나갔다. 근사체험, 영혼, 사후생 등의 이야기로 뒤덮여 있는데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다름 아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문이기 때문이라고. 이 부분이 조금 황당하게 다가왔는데,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의술을 다루는 자로서 비과학적인 현상들을 종합하여 자신의 의견을 펼치기 때문이었다. 사후세계와 영혼, 유체이탈을 이야기하는 의사라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자살을 줄이고 매사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죽음이 임박한 자들에게 삶의 마무리를 돕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긍정적인 효과일 것이다. 그런데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확고하게 믿는 근거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각 사연들의 내용에 담긴 모순들이 너무나 명확하여 설득되지 않았다. 철학책도 아니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임상 논문 정도가 되겠다.

 

무엇보다 남겨진 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