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거래를 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오래되고 낡아서 물건을 무료 나눔으로 거래 사이트에 올렸다.
기능상의 문제는 없지만,
워낙 낡은 물건인지라 사진도 다양한 각도로 찍어서 올렸고
판매 글에도 고지를 했다.
만 하루가 채 되지 않아 4명이 구매를 희망했다.
제일 먼저 신청한 한 분은 심지어 꼭 필요하다는 메시지까지 남겼다!
그래서 그분께 드리기로 하고 약속을 잡았다.
약속 시간보다 약간 늦은 시간에 톡이 왔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왔는데 약속 장소를 못 찾겠단다.
내가 사는 단지는 오래되어서
지하 주차장이 아파트와 연결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구조도 조금 복잡한 편이었다.
나는 분명히 지하로 내려가지 마시고
지상으로 오시라고 미리 안내했었다.
그분은 이모티콘까지 보내면서 알겠다고 했었고.
하지만, 그럴 수 있지 싶어서 급한 마음에 전화번호를 건넸고 곧이어 전화가 왔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내가 있는 곳을 설명하면 못 알아들을 것 같아,
단지 출입구 쪽으로 다시 나오시라고 설명하고
내가 그쪽까지 나가서 만나기로 했다.
귀찮지만 그 정도 호의는 베풀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량의 모습이 보였다.
H사 고급 차량이었다.
흰머리가 좀 있는 50대 남성으로 보였다.
인사를 나누고 물건을 건넸다.
그때까지 그 사람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고,
나와 인사를 하고도 전화를 끊지 않았다.
트렁크에는 이미 좋은 골프백 2개가 실려 있었다.
그냥 돌아서서 들어갈까 하는데, 전화를 끊었다.
그냥 가기엔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내가 먼저 말했다.
"좋은 것 사셔도 될 텐데, 너무 낡은 것 가져가시는 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아, 연습장에 두고 쓸 거라서 아무것이나 상관없어요~"
"네 그러시군요. 잘 쓰세요~"
고맙다는 말을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셨겠지.
You're welcome!
이때까지는 정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나에게 쓸모없는 물건이었지만,
누군가가 활용한다니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생겼다.
30분쯤 뒤 전화가 왔다.
아까는 정신없고 어두워서 잘 못 봤는데,
상태가 영 별로라는 것이다.
음... 기능상에는 문제가 없고
애초에 올릴 때에도 그렇게 설명드렸었다고 답변드렸다.
"아, 그런가요? 쓰는 데에는 문제가 없죠?
아는 후배한테 선물로 챙겨주려다 보니 좀 그래서요"
아까는 분명히 연습장에 두고 쓸 것이라고 했었는데..
이때부터 싸해졌다.
호의는 접고, 적당히 끊어야겠다 싶었다.
통화를 마치고 상대방 전화번호는 차단을 했다.
역시나 나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했었나 보다.
중고 거래 어플을 통해 톡이 온 걸 보니...ㅎㅎ
돈 주고 버려야 할 물건을 자기한테 준 것이라며
불만을 이야기한다.
더 이상 상대할 가치가 느껴지지 않아,
어플에서도 상대방을 차단하였다.
나이가 들면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1. 인정하기
- 다 안다고 생각하고 대강 넘어가지 말자
- 눈이 침침하면 더 시간을 갖고 읽어보고, 살펴보자
-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 본인의 잘못이 있다면 사소한 것이라도 바로 잡고, 사과하자
2. 예의를 갖추기
- 상대가 호의를 베풀면 나도 최선을 다해 베풀자
- 나이가 많다는 것 자체는 그저 살아오는 동안 먹고/자고/싼 양이 상대보다 많다는 의미이다
- 중요하지 않은 전화는 면전에 있는 상대와의 응대가 끝난 뒤로 미루자
3.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기
- 곧바로 들통날 거짓말을 하지 말자
- 사소한 것이라도 습관이 되면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
끝으로, 공짜를 너무 좋아하지 말자.
대가만큼만 기대를 걸자.
그리고 나도,
별 것도 아닌 걸로 인심 썼다고 생각하지 말자.
적당한 대가를 지불할 줄 아는 사람과 거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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