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인의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유독 우리나라 선수들이 눈물을 많이 흘린다. 지난주 HSBC 월드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고진영 선수도 마지막날 18홀 세컨드샷을 그린에 잘 올려두고, 걸어가는 동안 눈물보가 일찌감치 터졌다.
우승 후 캐디와 포옹하는 고진영, 게티이미지 LPGA
손목 부상으로 거의 1년 간 부진했었는데, 잘 회복해서 대회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던 타이틀 방어까지 성공했으니 기뻐야 마땅하지만 그에 앞서 눈물이 터진 것이다. 150주가 넘는 기간 동안의 세계랭킹 1위었던 그가 느꼈을 마음고생이 느껴졌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인생이지만 - 파친코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옮긴이 신승미)는 목차부터가 웅장하다.
고향 Hometown, 1910-1933
모국 Motherland, 1939-1962
파친코 Pachinko, 1962-1989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무려 90년 간의 어느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이며, 역사 소설이다. 소설 중에서 이렇게 긴 시계열을 배경으로 쓰인 책을 읽은 기억은 없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영어로 쓴 책을 한국어로 옮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묘사가 너무도 생생하여 당시 그곳의 냄새, 질감, 온도가 느껴지는 듯하다. 대체 원작은 어떻게 서술되어 있으며, 이를 또 인물들의 사투리와 말투, 단어 등을 어떻게 옮겨 썼는지 그 과정도 가늠이 안된다.
파친코를 읽고 있다가 고진영이 소환된 이유는 작품 등장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한국인 고유의 정서 한(恨) 때문이었다. (물론 엄청나게 성공한 커리어로 보나 성씨로 보나 파친코 등장인물 중 고진영과 가장 비슷한 인물은 고한수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데, 소설 속에 나오는 가족의 90년 간의 일기를 멀리서 지켜봐도 도무지 희극이 아니다. 허무하게 죽고, 또 새로운 생명은 태어나고. 테이프 빨리감기 하듯이 속도감 있게 쭉쭉 써 내려가는 소설에서 인생의 덧없음과 헤어 나오기가 지극히도 어려웠던 운명의 덫을 보면서, 그래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있었는데 지금 내가 느끼는 어려움은 명함도 못 내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