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독서

고진영 축하 - 눈물 많은 한국인(feat. 파친코)

세로토닌파크 2023. 3. 7. 08:59
눈물 많은 한국인

 

개개인의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유독 우리나라 선수들이 눈물을 많이 흘린다. 지난주 HSBC 월드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고진영 선수도 마지막날 18홀 세컨드샷을 그린에 잘 올려두고, 걸어가는 동안 눈물보가 일찌감치 터졌다.

 

우승 후 캐디와 포옹하는 고진영, 게티이미지 LPGA

 

손목 부상으로 거의 1년 간 부진했었는데, 잘 회복해서 대회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던 타이틀 방어까지 성공했으니 기뻐야 마땅하지만 그에 앞서 눈물이 터진 것이다. 150주가 넘는 기간 동안의 세계랭킹 1위었던 그가 느꼈을 마음고생이 느껴졌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인생이지만 - 파친코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옮긴이 신승미)는 목차부터가 웅장하다. 

 

  • 고향 Hometown, 1910-1933
  • 모국 Motherland, 1939-1962
  • 파친코 Pachinko, 1962-1989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무려 90년 간의 어느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이며, 역사 소설이다. 소설 중에서 이렇게 긴 시계열을 배경으로 쓰인 책을 읽은 기억은 없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영어로 쓴 책을 한국어로 옮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묘사가 너무도 생생하여 당시 그곳의 냄새, 질감, 온도가 느껴지는 듯하다. 대체 원작은 어떻게 서술되어 있으며, 이를 또 인물들의 사투리와 말투, 단어 등을 어떻게 옮겨 썼는지 그 과정도 가늠이 안된다. 

 

파친코를 읽고 있다가 고진영이 소환된 이유는 작품 등장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한국인 고유의 정서 한(恨) 때문이었다. (물론 엄청나게 성공한 커리어로 보나 성씨로 보나 파친코 등장인물 중 고진영과 가장 비슷한 인물은 고한수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데, 소설 속에 나오는 가족의 90년 간의 일기를 멀리서 지켜봐도 도무지 희극이 아니다. 허무하게 죽고, 또 새로운 생명은 태어나고. 테이프 빨리감기 하듯이 속도감 있게 쭉쭉 써 내려가는 소설에서 인생의 덧없음과 헤어 나오기가 지극히도 어려웠던 운명의 덫을 보면서, 그래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있었는데 지금 내가 느끼는 어려움은 명함도 못 내밀지.

 

그러니 고진영도 울지말고 본인의 성공을 충분히 즐기시길. 


 
파친코 1
한국계 1.5세인 미국 작가 이민진의 장편소설 『파친코』 제1권. 내국인이면서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자이니치(재일동포)들의 처절한 생애를 깊이 있는 필체로 담아낸 작품이다. 저자가 자이니치, 즉 재일동포의 존재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생이었던 1989년, 일본에서 자이니치들을 만났던 개신교 선교사의 강연을 들은 때였다. 상승 욕구가 강한 재미동포들과 달리 많은 자이니치들이 일본의 사회적, 경제적 사다리 아래쪽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저자는 그때부터 자이니치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번 작품에서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4대에 걸친 핏줄의 역사를 탄생시켰다. 삶은 모두에게나 고통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에게는 더더욱 가혹했다. 그들은 그저 자식만큼은 자신들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이었지만, 시대는 그들의 평범한 소원을 들어줄 만큼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가난한 집의 막내딸 양진은 돈을 받고 언청이에 절름발이인 훈이와 결혼한다. 양진은 남편 훈이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해나가며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녀는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면서 유일한 자식이자 정상인으로 태어난 딸 선자를 묵묵히 키워나간다. 부모의 살뜰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자란 선자는 안타깝게도 엄마 나이 또래의 생선 중매상 한수에게 빠져 결국에는 한수가 유부남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만다. 불행의 나락에 빠진 선자를 목사 이삭이 아내로 맞이하면서 구원을 받게 되고, 둘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이삭의 형 요셉 부부가 사는 일본의 오사카로 향한다. 일본에서 한수의 핏줄인 첫째 노아와 이삭의 핏줄인 둘째 모자수를 낳은 선자는 친정엄마인 양진처럼 여자로서의 인생은 잊어버린 채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삶을 고생스럽게 살아가는데……. 부산 영도의 기형아 훈이, 그의 딸 선자, 선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낳은 아들 노아와 모자수, 그리고 모자수의 아들인 솔로몬에 이르는 그 치열한 역사, 뼈아픈 시대적 배경 속에서 차별받는 이민자들의 투쟁적 삶의 기록, 유배와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고향과 타향, 개인의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인지 질문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세 여성은 강인한 어머니이자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편으로는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한 여성의 삶을 안쓰럽게 만드는지도 보여준다.
저자
이민진
출판
문학사상
출판일
2018.03.09

 

간만에 훌륭한 역사책을 읽었다. 역사는 몇몇의 지도자가 만들어내는 게 아님을 다시 한 번 느꼈다.